영국 TV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채널은 단연코 BBC 1 또는 2다. 분명히 BBC는 잘 기획하고 커미셔너들의 눈도 영민하고 무엇보다 훌륭하게 만들어 낸다. 그러나 영국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채널은? 단연코 채널4 이다. 채널4는 재원을 광고에 기대고 있지만 BBC와 함께 공영방송이다. 방송문화진흥회라는 공익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한국의 MBC와 그 지배구조가 거의 같다. MBC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하듯 영국 채널4의 이사진은 Ofcom 이라는 방송 규제기관에서 임명한다. 그러나 채널4가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은 공영방송이라는 무게감과는 달리 결정적으로 선정적이다. 

선정적이라는 단어가 섹스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채널4는 선정적이다. [Sex Box]라는 프로그램은 스튜디오에 박스룸을 설치하고 그 속에서 섹스를 하고 나온 땀 내 나는 커플과 토크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홈에 올려진 모토는 이렇다. ‘Sex is integral to our lives, but few of us talk about it openly and honestly with our partners. In Sex Box, couples discuss their feelings and sensations about their love life after having sex.’ 좋은 말이긴 하다. 그리고 인간사 내밀한 이야기, 숨은 이야기를 들추는게 토크쇼의 묘미이긴 하다. 그러나 아직 섹스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커플들을 앉혀 놓고 바로 직전의 침대 위 행위에 대해서 TV가 이야기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채널4가 그렇게 한다. 그들은 섹스토이에 대한 스토리도 담고 은밀하게 운영되는 섹스파티도 다룬다. 윤락가를 고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우 구체적인 '정보'를 준다. 10대들의 섹스를 다룬 프로그램에서는 세태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콘돔 사용하는 법, 다양한 체위와 기구 사용법까지 가르쳐 준다. 매우 진지하게. 

이 박스, Sex Box

이 박스, Sex Box

그러나 채널4의 선정성은 외설적이라는 단어와는 맞지 않다. 대신 도발적이다. 그것이 이 채널의 콘트롤러, 커미셔너들이 공유하는 가치로 읽힌다. 세계 최고의 브랜드 BBC가 있는데 1982년 영국이 굳이 채널4를 만든 이유는 공영방송끼리 경쟁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공영방송이 상업방송과 하는 경쟁과 공영방송끼리 하는 경쟁은 다르다. KBS와 MBC가 경쟁하는 지점은 KBS와 SBS가 경쟁하는 지점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채널4는 BBC와 경쟁하는 그 지점을 '도발성'에서 찾았다. BBC는 그들이 BBC이기 때문에 다룰 수 없는 영역이 있다. ‘To be the most creative organisation in the world,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조직’을 비전으로 내세우는 BBC 지만 센세이셔널리즘과 창의성은 동의어가 아니다. 채널4는 상업방송의 선정성과 BBC의 독창성 사이의 어떤 그 미묘한 지점들을 짚어 낸다. 그러니 당장은 BBC가 포용할 수 없는 새로운 이슈와 실험은 채널4의 문을 먼저 두드리게 된다. 공영방송 채널4가 추구하는 공영성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의 MBC가 오랫동안 시달린 편견이 있었다. 광고를 재원으로 하는 공영방송이라는 구조가 이중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상업방송도 아니고 공영방송도 애매하니 소위 민영화하라는 압박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방송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에 채널4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례가 없다는 억지가 지금도 횡행한다. 2008년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방송통신위원회(영국으로 치면 Ofcom)의 수장이 된 한 인사는 MBC에 '정체'를 찾아 주어야 한다고 흰소리를 해대곤 했다.

이런 자세, BBC Radio Sheffield 의 리포터

이런 자세, BBC Radio Sheffield 의 리포터

BBC가 언론의 위상, 공공서비스로서 방송의 기준을 제시한다면 공영방송 채널4는 선정적 아이템을 상업적이지 않게 다루는 프레임을 실험하고, 방송 퀄리티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선정적 상업방송이 영국에 발을 붙이기 힘든 이유도 그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에선 MBC가 KBS와 경쟁하면서 창의적 공영성의 폭을 넓히고 SBS와 경쟁하면서 방송 품격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jTBC가 손석희를 영입하고 저널리즘의 본연을 주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jTBC의 손석희를 보지 않고 손석희의 jTBC를 본다. 나영석의 '삼시세끼'지 tvN의 그것은 아니다. 사람이 브랜드고 개인의 역량이 채널의 이미지를 압도할 수도 있는 시대다. 그러나 그렇다고 jTBC가 BBC가 될 수없고 tvN이 채널4가 될 수는 없다. 공영방송은 공영방송만의 역할이 있고 존재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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