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르게 뒤쫒는 데는 남다른 면이 있는 한국이다. 사회적경제의 성장에 요구되는 한국 정부의 법령과 정책은 그리 뒤떨어진 편이 아니다. 정부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다양한 사회적경제 관련 법령과 정책을 연구하여 각국의 장점만을 모아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하였고, 지금도 정치권에서 사회적가치 법안과 사회적경제 기본법 제정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혁신, 사회적경제는 정부의 움직임과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네 바퀴가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서로 협력을 이룰 때 그 기반이 다져지고 성장이 가능하다. 풀뿌리 단체와 시민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시도가 실험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시도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되는 돈과 지원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정부 보조금과 정부가 주도하는 진흥 정책 및 프로그램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The Social Economy", Robin Murray

"The Social Economy", Robin Murray

영국의 경우를 보자.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로 시작된 영국 정부의 긴축 재정이후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 등에 지원되는 공적 자금 규모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또한 기존에 지원되오던 정부 보조금도 성과 중심의 보조금(paymenr by results = 목표한 사회적 성과를 만들어 냈을 때만 정부에서 보조금을 후불하는 방식)과 사회적 투자와 융자라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영국에서조차 사회혁신을 시도하는 풀뿌리 시민 단체와 개인, 사회적경제내 기업 등의 자금 조달에 큰 타격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이 고사하지 않고 살아남아 의미있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사회혁신 분야의 상당수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관’에 의존하는 한국 현실에 반해, 영국에는 약 8800개의 민간재단과 비영리 공익신탁기관이 오랫동안 사회혁신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만큼이나 규모도 크고 역할도 중요한 민간 자금과 민간 인재가 여전히 이 분야에 풍성히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보다 자유로운 위치에서 꾸준히 혁신적인 실험들을 지원하고 있다. 

Andrew Barnett, Director of 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 UK. Photo by K.Ahn

Andrew Barnett, Director of 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 UK. Photo by K.Ahn

영국의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에 지원되는 많은 민간자금은 그 규모 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개인이 기부한 기금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전통적인 자선재단, 기업의 수익에서 출자된 기금으로 만들어진 자선재단, 지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만들어진 지역재단, 젊은 사업가들의 경영적 모델을 적용하여 보조금을 지원하는 벤쳐형 자선재단, 최근 기술의 발달로 시작된 다양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좀 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기업에 투자를 하고자하는 일반 개인 투자자 등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모을 수 있는 기금의 성격은 실로 다양하다. 지난 3월에 진행한 칼루스트 굴벤키언 재단 앤트뷰 바넷 대표와의 인터뷰는 사회혁신 실험과 성장에 민간재단이 기여하는 바와 그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한겨레신문 : 칼루스트 굴벤키언 재단대표 앤드류 바넷 인터뷰: "새로운 실험 통해 사회 막힌 부분 제시"

영국의 많은 민간재단들도 장학사업이나 빈곤퇴치 등의 전통적인 자선사업들을 한다. 하지만 굴벤키언 재단은 이들 전통적인 재단과 구별되는 사회혁신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이슈의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 복잡성에 기인한다. 노숙인의 문제를 단지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하는 것으로는 곧 한계에 도달한다. 노숙인이 거리로 나가게된 근본 원인인 일자리 제공의 문제, 알콜중독 재활의 문제, 노숙인 개인의 자존감 회복의 문제 등 여러 문제를 함께 고민할때 그 해법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굴벤키언 재단은 각 사회이슈와 관련하여 전문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는 다양한 시민단체, 사회적기업, 정부기관, 연구조직 등을 한자리에 모아 그들의 협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모델을 만들어 나간다. 

통상 혁신은 서로 다른 영역의 활동가들이 기존에 시도해보지 못했던 협력활동을 통해 만들어진다고들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회혁신 뿐 아니라 비즈니스 혁신을 논하며 미래를 융합의 시대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융합을 만들어내기 위한 관이 주도하는 작위적인 협력은 얼마나 많은가? 과연 그러한 협력은 우리가 기대하는 융합에 기반한 혁신을 만들어내는가? 굴벤키언 재단의 경험은 다양한 참여자들의 동등한 참여와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장기적인 비전을 함께 만들어나갈 때만 의미있는 협력과 융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해준다.

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 (UK Branch), Shoreditch, London. Photo by K.Ahn

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 (UK Branch), Shoreditch, London. Photo by K.Ahn

앤드류와의 인터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굴벤키언 재단의 파트너들에 대한 철학과 태도이다. 흔히 펀더(funder)와 펀디(fundee)로  정의되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파트너(partner) 또는 이들간의 협력의 극대화를 위한 조력자로서 재단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지원 자금줄을 쥐고 있는 스폰서로서 프로젝트의 방향과 목표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기존에 시도해보지 못했던 많은 실험을 해보는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 프로젝트들은 위대한 아이디어와 단 한 번의 실천으로 완성되는게 아니다. 굴벤키언 재단은 이러한 속성을 잘 알고 지속적인 시도와 실패, 그 속에서의 성찰을 반복하며 장기적인 사회변화를 파트너들과 함께 고민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미션으로 여기고 있다. 

한겨레신문 : 영국 민간재단 현황: "민간기구 8800여곳 주도 ... 발빠른 혁신 실험 가능"

한국의 경우를 돌아보자. 민간의 자본이 가장 많이 쌓여있다는 대기업들은 사회혁신이나 사회적경제는 커녕 자신들의 신사업을 위한 투자도 꺼리고 사내보유금만 키워나가고 있다. 장학금으로 흔쾌히 전재산을 기부하는 선행의 이야기는 종종 들려오지만, 그들의 돈을 좀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여 사회적 문제 해결의 영향도를 높이고자 하는 예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인의 돈을 선한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러한 플랫폼의 성장과 활성화는 느리고 규모도 미흡하다.

오늘도 한국 내 대부분의 비영리기관과 사회적기업 등은 대부분 정부 지원금만을 해바라기 보듯 바라보고 있다. 정책 기조가 바뀌어 정부지원금이 사라지거나 줄어들면 이들 풀뿌리 단체와 기업들은 자신들의 주제를 바꾸어 다른 보조금을 지원할 수 밖에 없다.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너무나도 취약하다.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정치가 결정하는 공공자금만으로는 변화와 성찰을 기반으로 인내해야하는 사회혁신 자금의 성격과 규모를 충족할 수 없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창의성이 '인내자본'과 효과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사회혁신이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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