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선이 예상을 뒤엎고 보수당의 과반 승리로 끝났다. 한국에서 새누리당이 얼마전 보궐선거에 압승한 것과 비슷하다. 새민련이 텃밭인 광주를 '호남' 정치를 내세운 천정배에 내어준 것은 영국 노동당이 '스코틀랜드' 정치를 주장하는 정당(SNP)에 밀려 이 지역에서 무려 40석을 잃은 것과 겹쳐져 보인다. 관악에서의 정동영이나 영국 자민당(Lib-Dem)의 참패도 묶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뭔가 애매한 쪽은 유권자의 관심 밖이란 것이다. 특히나 가운데서 양쪽을 다 견제한다는 것은 말만 번드르할 뿐 실제로는 제 정치적 이권만 챙기겠다는 선거꾼의 주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하튼 수치로만 보자면 오늘 영국 총선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중간을 지키겠다는 황당한 선전물을 내세운 자민당이 보수당, 노동당, SNP에 표를 나눠주고 산화한 결과다. 

이번 영국 총선은 마이너리티 정부(노동당)로 갈것인가, 과반 안정정부(보수당)로 갈 것인가의 선택이기도 했다. 노동당이 SNP와 연정을 안한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노동당이 다수당(과반이 아닌)이 되더라도 정부 구성조차 애매했다. 전략적 투표행위가 일상적인 한국이라면 보수당 압승은 불보듯 뻔한 선거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적인 이유 외에도 영국사람들은 한국처럼 보수당의 압승에 멘붕에 빠지진 않는다. 민주주의 제도와 역사가 탄탄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영국의 보수당과 한국의 새누리당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새누리당은 사실 영국의 보수당 보다 극우포퓰리즘 정당인 UKIP(영국독립당)에 더 가깝다. 특히 친박진영이 그렇다. 말하자면 새누리당의 스펙트럼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그룹이 ‘집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보수당이 UKIP에 10여석을 뺏기고 결국 UKIP과 연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영국 시민들도 멘붕을 겪지 않았을까?

EU 탈퇴, 이민제한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극단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자로까지 여겨지는 영국독립당(UKIP)의 의회 진출은 소선거구제(first past post system) 덕분에 단 1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전국 득표율(12.6%)로만 보면 UKIP은 자유당(8석, 7.9%)을 제치고 당당히 '넘버쓰리'가 되었지만 당대표 조차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그 유일한 한 석을 선사한 사람도 전 보수당 의원(Douglas Carswell)으로 작년에 보수당을 탈당하고 UKIP으로 옮겨 재선된 인물이다. 보수당 리더 David Cameron 총리가 2017년 이전에 EU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친다고 했으니 이 밑바닥 정서는 그때 진짜 결판을 볼테지만, 영국독립당의 웨스트민스터에서의 발언권은 ‘제도’에 의해 효과적으로 제어된 것이다. 문제는 이후다. 

선거운동 기간, 노동당 견제를 위해 분리주의자 SNP가 영국을 찢어놓고 있다고 주장했었던 카메론의 총리 수락연설의 핵심은 '모두의 총리, 위대한 영국'이었다. 보수당, 노동당, 자유당 각 한 석씩만 허용하고 나머지 스코틀랜드가 가진 56석 모두를 싹쓸이한 스코틀랜드 정당(SNP)을 잉글랜드 런던에서 맞닥드리는 것도 참으로 불편한 일일 것이다. 요컨데, 한국이나 영국이나 정치적 관심을 보수의 실력에 맞추어 보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우 성향의 새누리당 내에서 유승민과 같은 보수 정치인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지, 영국의 보수당이 어쨌든 밑바닥 정서로 확산되어가는 반정치, 냉소적 민심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웨스트민스터가 스코틀랜드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하는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Ed Miliband 이후 노동당 리더십의 향배가 궁금하고, 재보선 패배 이후 내홍을 겪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환골탈퇴 할 수 있을지보다, 두 나라 정치의 향후 10년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승리한 보수들의 수준이다.

Photo by K.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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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물러나던 노동당의 Ed Miliband는 '그래도 '불평등' 이슈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증유의 불평등과 갈등을 겪고 있는 세계에 노동당 만이 해법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언컨데 노동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그 불평등 이슈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창안해야 하는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 시스템은 지금 어느 정치세력 한 쪽이 헌장과 같은 정답을 갖고 명령만 내리면 집행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과 영국에서 보수의 실력이 중요한 것은 미우나 고우나 그들이 이 거대한 대화의 질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제도와 정책은 보수가 만들었을 때 훨씬 더 탄탄해 진다. 

멱살잡이를 하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진보주의자 역시, 보수의 역량을 키우고 극우의 발호를 견제하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사실 '나쁜' 보수는 '미숙한' 진보에 기생한다. 진보의 '저항' 정치가 국민의 선택으로 이어지기는 커녕 극우 세력에게 떡밥만 던져주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세월호 특위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에서 보듯 우리는 어떤 일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가치를 담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토론이 없다. 제대로 돌아갈 것인지 깊은 고민도 없이, 당장 '내 편'만으로 '조직'을 만드는 데에만 혈안이다. 그러고선 뭔가 수가 틀리면 ‘저항’ 모드로 돌입한다. 그것이 모두 극우를 키우는 떡밥이 되었다. 

문제는 저항(protest)이 아니라 대안(alternative)이다. 그리고 그 대안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work)'하는 것이어야 한다. 진지하고 현실적인 보수주의자들이 많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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