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제1차 [정부혁신 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정부와 공직 행위의 공공성 회복'을 강조하면서 '모든 정부운영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그 취지는 2014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대표 발의한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의 연장으로 이해한다. 

[사회적가치 기본법 - 제안이유] (문재인 의원 대표발의 2014년)
"사회적 가치 실현을 행정 운영의 기본원리로 삼고, 공공 기관의 조직운영 및 공공서비스 공급과 정책사업 수행과정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촉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가치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 할 필요가 있음."
"이 법은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조달, 개발, 위탁, 기타 민간지원 사업에 있어,비용절감이나 효율성만을 중시하기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도록 하며,이러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공공기관의 평가에 반영토록 하여, 우리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우리는 아예, '가치중심의 정부 운영원칙'을 과감히 대통령 개헌 발의안에 반영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번 개헌은 무너진 공공부문의 공적 가치를 복원하고 시스템화하는 데 1차적 목표가 있다. 개헌의 단골 이슈들 외에, 최소한 촛불이 웅변한 내용 하나는 들어가야 2018년 개헌의 뜻이 살아나지 않을까? '권력 분산형 개헌'이 '큰 도적'을 '작은 도적떼'로 대체하는 데 그친다면 우리가 바라는 '가치형 개헌'은 큰 도적이든 작은 도적이든 모두를 '공복(公僕)'으로 바로 세우는 데 목표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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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헌법은 국회, 정부, 법원 등 국가기관을 어떻게 구성하고 무슨 역할을 부여할 지 나열해 놓았을 뿐, 이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언급이 없다. 전문과 기본권, 경제에 관한 조항들에서 사안별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유추와 해석의 권한은 물론 선출직 공무원을 포함한 공무원 관료 자신에게 있다. 

[현행 헌법]
제7조 ①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예를 들어 공무원에 대한 규정 제7조 ①항은 아예 국민의 무엇에 봉사하고 책임을 지는지도 기술하지 않는다. 심지어 국민과 공무원의 상하, 주종관계도 역전된 듯하다. '봉사'의 주체로서 공무원이 외려 국민을 상대화하고 은혜를 베푸는 모양새다. 이 조항은 5.16 쿠데타 후 개정되어 권위주의의 잔재가 짙게 베어있다. 
②항도 건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조항은 2공화국 때 삽입된 조항으로 3.15 부정선거와 같은 관권부정을 막기 위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①항과 맞물려서는 공무원을 특수한 신분의 기득권층, 높은 지위의 벼슬아치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참고: [제헌헌법] 제27조; 공무원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수임자이며 언제든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국민은 불법행위를 한 공무원의 파면을 청원할 권리가 있다.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받은 자는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단, 공무원 자신의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과 공무원의 명확한 주종관계를 적시하고 공무원의 직무상 책임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제헌헌법의 공무원 규정과 비교하면 현행헌법의 관존민비(官尊民卑)의 권위주의 잔재는 더욱 분명해 진다. 이처럼 제7조(특히 ①항)를 손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기에 더 나아가 영혼없는 공무원에 가치를 불어넣는 조항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정부혁신 전략회의]에서 나온 '가치 중심 정부 운영 원칙'은 이에 대한 매우 훌륭한 대안이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단 한 줄의 명문(明文) 만으로도 공공이 수행하는 모든 정책과 재원 배분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이를 위한 인프라로서 정부의 예산·인사·조직·평가체계까지 바꿀 수 있다.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이 뜬금없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현행 헌법 전문이 기술하고 있는 기회균등, 안전, 자유, 행복 같은 가치들과 '사회적 가치'는 다르지 않다. 다만 그 구체성 확보를 위해선 모호한 전문이 아니라 총강의 조문에 반영하는 것을 검토해 보자는 뜻이다.

 


 

비슷한 입법 예는 영국이다. 물론 영국은 불문법 국가로 헌법을 갖고 있지는 않다. 대신 2014년 문재인 의원이 발의한 '사회적가치 기본법'의 모법이라 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사회적가치)법(Public Services (Social Value) Act 2012)'을 운용한다. 이법에 의해 영국의 공공기관은 공공서비스 계약시 '지역의 경제/사회/환경적 웰빙(가치)'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016년 제정된 웨일즈의 '미래세대를 위한 웰빙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웨일즈의 모든 공공정책이 지향해야할 가치(번영/회복력/건강/평등/통합/활력/글로벌)와 그 달성을 위한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법'이 재정적 가치(financial value)와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최초의 입법적 시도라면 '미래세대를 위한 웰빙법'은 다음 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노력해야 할 일들을 공공정책의 목표로 정의한 세계 최초의 예로 알려진다.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공공부문은 시장을 압도하는 혁신의 견인차였다. 복지국가는 국가혁신의 빛나는 금자탑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민간의 혁신이 관료화한 공공부문을 추월한지 오래다. 국가가 시민의 생활영역에까지 관여하고자 했던 '복지국가'는 공공서비스의 획기적 성장에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 과학적인 근거와 공평한 집행을 이유로 고도의 관료시스템에 갇혀 버렸다. 시민은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수혜자, 객체가 되었다. 공공서비스의 문호를 개방하고 가치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은 시민 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조치다. 

 

Hambleton, R (2014) ‘Leading the inclusive city: Place-Based Innovation for a Bounded Planet’ p. 60 에서 수정

Hambleton, R (2014) ‘Leading the inclusive city: Place-Based Innovation for a Bounded Planet’ p. 60 에서 수정

 

 

지난 10년, 영혼없는 공무원이 적폐가 되었다. 심지어 언론 조차 저널리즘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이번 개헌은 공무원은 물론 모든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지향해야할 근본 원칙으로서 공공성의 가치를 심는 역사적 소명을 실천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 중심의 정부운영 원칙을 헌법적 가치로 삼는 것은 그런 의미다. 영국에 헌법이 제정된다면, 미래세대법과 사회적가치법을 보듬는 조항을 넣지 않았을까? 우리가 먼저 '미래세대의 경제, 사회, 환경적 가치를 위한 공공의 노력' 그 한 줄을 써넣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래지향적 가치를 담은 세계 최초의 헌법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촛불시민에 돌리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 이왕에 벼락치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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